개요
대금(大金, 1115년~1234년)은 여진족 완안부의 아골타가 1115년 황제에 즉위하여 국호를 대금, 연호를 수국(收國)으로 정하면서 건국됐다.
금나라의 시조 아골타는 한 때 여진족들을 지배하던 요나라를 서쪽으로 내쫓고 그 자리에 여진족들의 나라인 금나라를 세웠다. 이 서쪽으로 내쫓긴 이후의 요나라를 서요라고 칭한다. 금나라는 요나라를 내쫓은 이후, 남쪽에 있던 송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대규모 군사 원정을 일으켰고, 이 전쟁은 향 후 몇 백 년 동안 지속되었다. 한편 금나라의 여진족들은 중원에 거주하기 시작하며, 한족의 문화에 깊이 젖어들었으며 나중에는 심지어 북부의 몽골족들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개축하기까지 하였다. 금나라 시기, 중국 북부에서는 유교가 다시 흥하였고 한족의 문화가 흥성하였다.
금나라의 봉신으로 살던 몽골족들은 칭기즈칸이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자 하나로 통합되었고, 마침내 1211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금나라 군대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결국 1234년에 금나라는 멸망하고야 만다.
국호
발해 대족 출신으로 고영창의 반란 때에 여진에 항복한 양박은 완안 아골타엑 황제를 칭하라고 권했고 새로운 나라를 개원하게 하였다. 그리고 금나라의 영토에서 금이 많이 생산되니 국호를 '대금'이라고 정하도록 권했다. 이에 아골타는 황위에 오르며 "오나라는 빈철을 국호로 삼아, 그 견고함을 취하였지만, 결국에는 또한 녹이 슬고 부러지니, 오직 금만이 변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 "금의 색깔은 백인데, 완안부의 색깔 또한 백이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국호를 대금이라 정했던 것이다.
역사
건국
금나라는 1115년, 현대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 걸쳐 살던 여진 부족완안부의 족장 아골타에 의하여 세워졌다. 구전에 의하면 아골타는 완안 함보의 후손이었다고 전해진다. 원래 여진족들은 이 당시 까지만 해도 수백 년 동안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 시기에 여진족들은 거란족들에게 강간을 당하거나 잡혀가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이 같은 처사는 여진족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결국 요나라가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자 여진족들은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여진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요나라와 적대 관계였던 송나라는 이를 크게 반겼다. 1121년, 소나라는 금나라와 해상의 맹약을 맺어 함께 요나라를 무너뜨리기로 합의하였고, 곧바로 합동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전쟁에서 송나라 군대가 요나라에 맞서 고전하는 와중에 금나라 군대는 요나라에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결국 금나라 군대는 요나라 조정을 중앙아시아로 쫓아내는 데에 성공하였고, 요나라의 영토 거의 대부분을 흡수하였다. 한편 송나라는 요나라가 쫓겨난 틈을 타 요나라 남부 지역을 일부 회복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이 곳에 살고 있던 한족들의 극심한 반발을 받았다.
송나라도 한족 왕조였기에 한족들이 오히려 환영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 사정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구 요나라 영토에 살고 있던 한족들은 거의 대부분 요나라에 협력한 자들이었고, 송나라는 이들을 같은 한족이 아니라 적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나라 군대가 들어오자 이들은 북부의 금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금나라는 이를 기회로 삼아 곧바로 남진하였다. 이때 송나라가 저질렀던 치명적인 실수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송나라가 이때 요나라와 송나라의 국경 사이에 조성했던 거대한 숲을 없애 버렸던 것이다. 나중에 기병 위주의 금나라 군대가 물밀듯이 밀려오자 송나라는 더 이상 자연의 보호도 받기 어려워졌고, 금나라는 손쉽게 1127년 1월 9일에 송나라의 수도 개봉을 점령하였다.
이때 금나라는 송나라의 황제 흠종과 태상황이었던 휘종을 잡아갔고, 이들과 함께 조정의 고관대작들도 대거 납치해갔다. 이를 '정강의 변'이라고 칭하고 북송시기가 이를 기점으로 끝난 것으로 본다. 이후 송나라는 남아있는 세력들을 수습하여 중국 강남 지방으로 후퇴, 고종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였고, 이 시기 이후의 송나라를 남송이라고 부른다. 남송은 남쪽에서 군대를 모아 끊임없이 금나라와 맞서 싸웠으나 이후 조정에서 주화파가 득세하여 1141년에 송나라의 진회가 금나라와 평화협상을 맺으며 일시적으로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이 협상에서 송나라는 화이허 이북의 영토를 모두 금나라에게 내주어야 했으며, 당대 최고 명장이었던 '악비'를 죽여야만 했다. 게다가 세공으로 매 년 은 25만 량과 비단 25 만필을 보낼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후 개봉을 점령하고 중국 북부를 완전히 장악한 금나라는 오행 중에 흙을 자신들의 상징 원소로 정했고, 황색을 왕실의 색으로 삼았다. 오행설에 의하면 흙은 송나라의 상징 원소였던 불 다음으로 오는 원소인데, 이와 같이 금나라가 흙을 자신의 원소로 삼은 것은 송나라가 끝나고 금나라의 천하가 열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발흥
여진족은 발해 멸망 뒤로 한 동안 만주 지역을 떠돌며 거란족에게 숨죽이며 지냈는데, 이 거란(요나라)이 슬슬 막장 트리를 타자 세력을 키우기 시작해 12세기 초 부족 통일을 완수한다. 이후 금태종 때 거란에게 맨날 터지던 송나라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송나라는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요나라를 제거할 기회라고 생각해 기쁘게 받아들였다. 다음 목표는 뻔히 송나라라고 반대한 신하들도 있었지만 요나라를 향한 증오가 커서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쨌든 1125년 금은 송과 연합해 요나라를 멸망시키는데, 문제는 이후 북송의 송휘종이 잔머리를 굴려서 요의 잔당들과 배신을 때리자, 화가 난 금이 1년 만에 북송의 수도 개봉 (현재 카이펑)을 박살내고 화북지방을 점령했다는 것이다. 이를 '정강의 변'이라고 하는데, 이때 송은 황제, 상황, 황후, 황자, 황녀가 죄다 금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이때 북송 역시 망하고 그나마 임안(현재의 항저우)을 수도로 하는 남송은 유지해 중원의 반쪽이나마 사수할 수 있게 된다.
건국으로부터 화북을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12년이다. 그야말로 다크호스 왕조. 아골타의 형이 동북 9성을 돌려달라고 고려에 애원했던 때가 1109년인데, 이때부터 따져도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당시 동북아시아의 두 거대 제국을 무너뜨린 셈이다. 고려 입장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공 바치던 애들이 순식간에 대제국이 되었으니 황당했을 듯하다. 다만 이때 금에 무너진 요와 북송 모두 변방 (전자는 서쪽, 후자는 남쪽)으로 도망간 황실에 의해 재기에 성공하긴 했다.
'맹안모극'이라는 유목 민족 특유의 군사 조직이 힘을 발휘했고 두꺼운 갑옷을 입은 금나라의 철기병은 매우 막강했기 때문에 20년도 안 지난 기간에 요나라와 북송을 무너뜨리고 화북을 얻었다. 특히 금나라의 초중장 기병대인 '괴자마' 같은 경우 말에 2~3겹의 갑옷을 입히고 자기 자신도 갑옷을 덮었으며, 군마 3마리를 쇠사슬로 연결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1126년, 송나라의 지방관이 전공을 세울 목적으로 금나라 사신 일행을 공격했는데 사신을 호위하던 17명의 기병과 궁기병들에게 송나라 보병 2천 명이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용맹하고 전투에 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 북송을 공격하면서 얻은 공성 무기들과 초기 형태의 화약을 노략하고 그것을 응용하여 기상천외한 신무기들을 개발했는데 대표적으로 로켓의 시초라 할 만한 '비화창'과 화약 작렬탄인 '진천뢰'가 금나라 때 나온 무기들이다.
경제
금나라는 영토는 넓었지만 경제 가치가 있는 곳은 화베이뿐이었다. 그러나 화베이 지역도 물자가 풍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요 물자는 남송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송과 분쟁이 지속되면 전 국민이 물자 부족으로 곤란을 겪었다.
정부는 주로 조세로 국고를 충당했는데 여진족이 화베이로 이주하면서 조세 수입이 크게 줄어 재정난에 직면했다. 그러자 세종은 재정을 확보하려고 물력 전을 실시했다. 물력 전은 한족을 대상으로 재산에 따라 부과했다. 그러나 이 제도로 한족은 정부에 반감을 품게 되었다. 한편 해릉왕 때 동전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자 '교초'를 발행했다. 그러나 교초는 장종 이후 재정 궁핍으로 남발해서 가치가 폭발했고, 정부는 신임을 잃어갔다. 재정 위기 때문에 돈을 받고 관직과 도첩 등을 파는 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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